시뮬레이터
처음에는 그저 직감인 줄 알았다.
그냥 감이 잘 들어맞은 것 뿐이라고.
내가 특별해서 이런 걸 예측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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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이랬다.
학교가 끝나고 횡단보도 앞이었다.
보행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난 직후였다.
[0.5초 이내 사고 확률: 87.14%]
한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내 눈앞에 무언가가 느껴진 것이었다.
그리고 한 SUV가 그 사람을 들이받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 일은 금방 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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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졌다.
학교가 끝나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을 보면서 든 생각은 지금 와서 봐도 어이없었다.
'곧 그칠 것 같은데?'
운동장이 흙탕물로 가득해질 만큼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는데 '곧 그칠 것 같다'니.
말도 안 됐다.
하지만 내가 청소를 끝내고 학교를 나올 때, 비는 정말 그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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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원래 일기예보는 몇 주 후부터 몇 달 뒤의 중기 예보가 가장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까지 4달이나 남았던 그날, 내 눈앞에 또다시 그게 느껴졌다.
[12월 23일부터 폭설 예정]
그리고 4달 뒤, 크리스마스 5일 전부터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더니 25일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허리까지 쌓여 있었다.
이정도면 대충 봐도 누구나 눈치챘을 것이다.
내 '감'은 좀 이상하다는 걸.
슈퍼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보다 현실에 더 잘 들어맞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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