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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걸리버 여행기

 2024년 3월 25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다 읽었다. 겉보기에는 걸리버가 항해하다 겪는 별별 고생 여행을 정리한 800번대 책이다. 하지만 (나도 다 읽은 뒤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건데) 이 책은 사실 풍자 소설이다. 나는 '옮긴이의 말'을 읽기 전에는 스위프트가 풍자문학의 대가인지도 몰랐고, 한국에서 '걸리버 여행기'라고 하면 보통 소인국-거인국 얘기인 거로 생각한다(아닌가?).  실제로 읽어보니 그냥 소인국-거인국도 아니고(릴리펏-브롭딩낵) 곳곳에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풍자하는 내용으로는 릴리펏의 높은 굽 당(트라멕산)은 아일랜드의 고회파 토리당, 낮은 굽 당(슬라멕산)은 저교회파 휘그당을 가리키고, 낮은 굽 당만 좋아하는 황제는 조지 1세를, 양쪽 굽 높이가 달라 절뚝거리며 다니는 왕자는 조지 2세를 가리키는 내용도 있다. 또 걸리버가 오줌으로 내각의 불을 끈 뒤 여왕에게 미움을 받은 것은 스위프트가 <통 이야기>때문에 앤 여왕의 반감을 산 것을 풍자한다. 스위프트가 풍자를 너무 잘해서 <걸리버 여행기>를 출판할 때는 걸리버의 이름으로 출판했고, 출판을 알아볼 때에는 걸리버의 사촌으로 되어있는 심슨의 이름으로 알아보고 다녔다고 한다. 

 그럼 이제 풍자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1부에 걸리버는 자신보다 12배 작은 소인들이 사는 릴리펏에 불시착한다. 거기서 걸리버는 매일 1728명치 밥을 먹고 지낸다. 그러다 여왕의 궁궐에 난 불을 자기 오줌으로 꺼서 굶어 죽을 형벌을 받았지만 블레푸스크로 도망갔다가 다시 집에 잘 간다. 자기보다 모든 게 12배 작은 곳에서 남은 인생을 사는 것보다는 어찌어찌해서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된다(거의 쫓겨나다시피 나온 거지만). 

 2부에 걸리버는 모든게 자신보다 12배는 더 큰 거인국 브롭딩낵에 불시착한다(릴리펏에는 난파로 인해 불시착했지만, 브롭딩낵에는 육지에 잠깐 올라가 봤다가 동료들이 자신을 버리고 가버렸다). 거기에서 농장주의 애완동물로 있다가 나중에는 국왕의 애완동물이 된다. 걸리버에게는 이동식 집이 생겼는데, 집이 잠시 해변에 있을 때 독수리가 낚아채갔다가 바다 위에서 떨어뜨리고 그 집을 한 선박에서 발견하며 탈출하게 된다. 1부에서는 별 생각이 없이 그냥 읽고 재밌다 했지만 2부는 저런 거인 앞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니 뭐니 없고 일단 살길만 생각하는 게 답이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부에 걸리버는 해적들에게 잡혀 또다시 조난당한다. 그러다가 라퓨타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라퓨타에서 잠시 지내고, 일본에 가서 유럽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니바비와 러그내그, 글럽덥드립에 관광을 갔다가 결국 일본행 배에 오르고 거기서 네덜란드행 배를 탄 뒤 잉글랜드로 돌아간다. 라퓨타인들을 보니 실생활에는 소용이 없는 학문은 무슨 소용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발니바비에서는 말도 안 되는듯한 연구에 시간만 빼앗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하긴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과학적 업적이 처음에는 그저 시간낭비로 보였겠지). 

 그리고 4부에서 걸리버는 말(휘늠)들의 나라에 간다(이번에는 자신의 배의 선원들이 전부 해적이 되어 반란을 일으킨다). 거기에서 사람을 닮았지만 훨씬 말썽꾸러기고 더럽고 불쾌하고 냄새나고 야만적인 야후라는 동물을 보고, 말처럼 생겼는데 말을 하고 야후를 말처럼 키우는 휘늠이라는 동물을 본다. 이 휘늠은 야후나 사람이나 비교했을 때 훨씬 이성적이고 맞는 말만 하는 종족이다. 나는 이 4장을 읽으면서 인간은 양심적으로 휘늠에 가까운지, 야후에 가까운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직 하지는 않았다/2024.03.25. 기준). 걸리버는 이런 휘늠들 사이에서 5년 동안 지내다가 가족들에게 돌아가니 가족들이 야후인 것처럼 느껴지고 자신의 가족들을 포함해 모두가 불쾌하고 냄새나고 야만적으로 보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휘늠에 가까워지게 살아야지(말로만 그러는거 아니고?)

 

이렇게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다. 이 책은 인간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또 특정 인간을 풍자해 재미와 교훈을 모두 줬다. 요즘 두꺼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뭐라도 좀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 때문에 읽은 책이지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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