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동아리로 영화 <베테랑2>(15세)를 볼 예정이었는데 엄마가 "<베테랑>도 15세였고 폭력적이라는데 2편도 15세이고 덜 폭력적일 리는 없다"며 동아리에서 나 혼자 <파일럿>(12세)를 보게 됐다.
주인공 한정우는 하루아침에 인생 망한 뒤 한에어(Han Air)에 재취직하려 하는데 여자만 뽑는다고 하자 "ㅋㅋ 그러면 여자인 척 지원서 쓰면 되지 앜ㅋㅋㅋ"라고 술김에(?) 지원서를 쓰는데 1차 서류 심사에서 통과한다. 한정우의 여동생 한정미의 신분으로 신청했는데, 한정미가 "이거 자격증 위조잖아 불법이야"라고 하자 한정우가 "아지 안 뽑혔어. 뽑히면 거기서부터 문제지 지금은 문제없어"라며 여장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합격해서 부조종사로 재취업한다. 그런데 남자라는 게 슬슬 들통나기 시작하고, 한에어 쪽에서 감싸주는데 마지막에 '한국항공-한에어 공동 CEO 취임식'에서 뿜어버린다.
억지스럽고 웃긴 영화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많고 어쨋든 웃기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실이 아는 거는 어떻게 못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식으로 남자가 여자 행세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종종 했던 몰폰, 몰겜, 몰웹 등등을 포함해 의도적으로 한 거짓말은 끝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지만, 그건 영화니까 가능한 거다(실관람평에도 "'이혼하자'를 너무 쉽게 꺼낸다"는 식의 글이 있었다. 조금 자세히 보면 재미에 집중해 현실성을 조금 무시한 영화이다). 거짓말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게 눈덩이처럼 커져서 나중엔 좋지 않게 끝난다는 게 맞는 말로 느껴졌다.
그리고 하나 더. 젠더이슈와 역지사지의 내용도 담고 있는 것 같다. 한에어에서 양성평등을 말하며 여성 기장 비율을 늘린다고 한정우는 불합격, 한정미는 합격이다. 그런데 정작 객실 승무원(스튜어드)는 전부 여자다(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리고 항공기를 조종하다가 구름 속에서 우박을 맞으며 추락할 뻔하는 장면에서 기장 서현석(한정우의 공군사관학교 후배)으로부터 조종간을 가져오지 못하고 서현석은 '원래 비상사태에서 조종은 다 남자가 했다'며 조종간을 끝까지 잡고 있다가 기절한다.
서현석: (기내방송)...우린 다 뒈질꺼야 Tlqkf!!!
한정우[여]: 조종간 넘기라고 이 toRldi!!!
서현석[맨탈터짐]: 원래 비상착륙은 다 남자가 했어!!!
한정우[여]: (자리에서 일어나 서현석을 한 대 팬 뒤 다시 앉아 조종간을 잡음)
***욕 주의***
Tlqkf = ㅆㅣ ㅂㅏㄹ
toRldi = ㅅㅐ ㄲㅣ ㅇㅑ
또한 한정우가 여장을 한 뒤 자기가 했던 행동을 역지사지로 겪으며 한 번 미안해 하는 장면도 있다.
짧게 말하면 억지스럽고 웃긴 영화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양성평등, 역지사지, 거짓말과 사기 등등 심오한 내용도 담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엄마가 <베테랑2> 후기를 봤다는데, 음... 안 보길 잘 했다고 하네요... ^ㅎ^